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한국 mmorpg의 발생


내가 보는, 한국에서 mmorpg의 발생.





1. War Game

태초에 워게임이 있었더라. 우리가 요새 흔히 하는 RTS를 턴제로, 오프라인에서, 보드게임 하듯 하는 게임. 지금도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걸 즐기기 위해 들여야하는 소요시간이나 품이 너무 막대해서 그닥 대중적이진 않은 듯. 한편 워게임은 철저히 전략 게임에 가까운지라, 캐릭터나 드라마가 구체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물론 플레이를 하면서 드러나는 내러티브가 없을 수 없겠으나 병사 하나하나에 대한 백그라운드 스토리적 디테일은 조금 약한 느낌 ...

워게임이 주는 재미의 핵심은 아마도 다양하고 치밀한 전술전략의 구사에 있지않나 싶다. 현대의 RTS들이 여기에 순발력까지 가미하여 '오랜시간 고찰하여 최고의 전략을 뽑아내는 재미'로부터 살짝 빗겨나있다면, 워게임은 충분히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장기나 바둑에 가까운 게임이 아닐까한다. 장기 바둑의 각 팀에 설정을 부여하고 여러 유닛들에게 배경설정 집어넣으면 그게 워게임이지 뭐ㅋ

아마도 이런 워게임에 캐릭터성을 강화하고 드라마를 넣으면 일본의 SRPG 정도가 되지 싶은데, 물론 워게임과 SRPG사이에 직접적인 연이 있다고 보긴 아주 어렵고 ... 일본에서 SRPG를 탄생시킨 일종의 욕구(?)가 워게임에 적용되어 RPG의 탄생으로 연결되었을 거라는 혐의는 두는 편이다.

2. RPG (TRPG) 

워게임은 여전히 보드게임이고, 여기서 말하는 RPG 역시 보드게임의 일종으로서의 RPG 즉 TRPG이다. 워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집중할 수 있을만한 단위'로 유닛의 범위를 좁히고, 여기에 이 유닛들의 활동을 훨씬 디테일하고 짜임새있게 다듬은 것이 RPG라고 보는 편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될, 게다가 자손까지 많이 낳게 될 위대한 어떤 게임 장르의 탄생이다.

RPG가 제공하는 재미의 근본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 ... 하다고 말하기엔 지금은 그 열기가 좀 식긴 했지만, 아무튼 나는 RPG의 재미의 근본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 편이다.

첫번째는 자신의 캐릭터를 구사하여 다양한 '상황'을 극복해내는 과정의 재미. 여기서의 상황이란 RPG플레이에서 주를 이루는 '전투' 뿐만이 아니라 꽤 폭이 넓다. 예를 들자면,

당신은 적의 계략에 빠져 감옥에 갇혔다. 두터운 벽으로 둘러싸인 감옥에서 빠져나가려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 오래된 감옥의 벽이 두텁긴 하지만 사이사이로 틈새도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틈새라고해서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은 아니다. 아주 좁은 벽돌들 사이의 틈이다. (여기까지가 마스터에 의해 주어진 상황) 당신은 가지고 있던 가방을 뒤져 물병을 꺼낸다. 뚜껑을 열고 물을 감옥의 벽 사이에 난 틈으로 들이붓는다. 그리고 틈새에 들어찬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기도 전에 잽싸게 '동결' 주문을 외운다. 벽틈으로 스며들어간 물들이 동결 주문으로 인해 얼어붙기 시작하고, 물이 얼어붙으며 부피가 팽창한다. 팽창한 얼음은 감옥 벽의 틈을 더욱더 크게 만들어 그만 ... 감옥의 벽이 무너지고 만다 !! (여기까지가 상황에 대한 당신의 대처)

뭐 이런 종류의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지혜가 RPG의 재미의 핵심이 아닌가하는거다. 일반적인 컴퓨터 게임이 제공하는 재미와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미리 세팅된 한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즉 제한된 '가능성 공간'에서만 운신이 가능한 컴퓨터 게임에 비해 사람대 사람이 하는 게임이므로 그 가능성 공간의 크기가 무한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리고 물론, 그 차이는 꽤 크다.) 이를 흔히들 '자유도의 차이' 라고 하지만 이건 다른 기회에 다시 다루도록 하고 ...

한편 RPG의 재미의 본질은 이게 아니라 다른거라는 의견도 있다. 어떤 '캐릭터를 연기' 하는 과정이 바로 RPG가 재미있는 이유라는 주장이다. 기본적으로 RPG의 캐릭터는 그걸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와 100%일치하지는 않는다. 뭐 자신의 인격을 반영한 캐릭터를 만든다면야 그렇지 못할 이유도 없지만, 현실에 실재하는 당신과 RPG가 만든 가상 세계의 당신에겐 어딘가 다른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는거지. 그리고 RPG의 재미라는게 바로, 가상세계 속에서 그런 '나와는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재미'에서 나온다는 주장이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동감하지 않는 이유가, 나는 바로 그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과정이 너무 낯뜨거워서 RPG플레이를 포기했던 경험이 있어서이다. 그게 재미있었다면 내가 빠져들었어야하지만, 낯뜨거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이탈하게 된거지. 하지만 그런걸 '재미'로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걸 부정하긴 어렵다. 연기하는 연기자들이 느끼는 즐거움일지, 소꿉장난할 때 느끼는 쾌감일지는 나로서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이 된다' 라는게 흥미로울 수 있다는 점에는 십분 공감한다. 인터넷에서 넷카마질하는게 얼마나 즐거운 ... 아, 이건 됐고 ... 나는 이럴 때 '군대경험'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아쉽게도 여성분들이 공감하긴 어려운 에피소드일 수 있으나 아무튼 들어보자.

우린 흔히 군생활과 관련해 대단한 뻥을 아무렇지도 않게 치는 예비역들을 참 많이 만나게 된다. 재밌는건, 그 역이 훨씬 심하다는거다. 무슨 소린고하니, 군대가서 '내가 사회있을 때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에 대해 과장하는 사람이 무척 많고 그 정도도 쎄다. 당연하게도 '모든 군바리'가 다 그렇다는건 아니고, 허풍과 구라를 즐기는 남자들이 많이들 그런다. 성격이 좀 호탕하고 몸집이 좀 좋은 사람은 '내가 사회있을 때 서울 남산아래 카섹스파 행동대장이었어' 라고 구라를 친다던가, 호리호리하고 얄상하게 생긴 신병이 들어와 자기소개하는데 '제가 사회있을 때 여자들 좀 만나고 다녔습니다' '몇 명이나 자봤어?' '하 ... 한 200명쯤 되는 것 같습니다' (여성 비하적 내용일 수 있으나 내가 겪었던 실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이니 양해를 ...) 솔직히 난 저 말이 아주 안믿기더라. -_-

아무튼 군대에서 벌어지는 이런 '상호확증뻥' 경향은,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격하게 단절되어 아무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 일본의 유명하고도 재미있는 만화 '오늘부터 우리는'을 보면 중학교를 범생스럽게 졸업한 두 친구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신들의 중학생활에 대해 아는 이들이 별로 없으니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마치 중학교때 놀던 아이인 것처럼 머리를 염색하고 옷도 리버럴하게 (시쳇말로 양아틱하게) 입어야지~ 하고 결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거랑 아주 비슷하다.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단절되는건 동시에, 자신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는거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RPG는 아주 적절하게 제공한다. 실생활에서 자신을 과대포장하려면 최소한의 리얼리티나마 필요하다. 그러나 모두가 상호합의한 RPG속의 세계에서는 심지어 그 최소한의 리얼리티조차 벗어버릴 수 있다. 바로 그 기회 속에서 재미를 찾는게 바로 RPG의 재미의 본질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이거야말로 RPG를 말아먹은 주범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궁금하신 분들은 '바바 히데카즈' 라는 분이 쓰신 RPG에 대한 글을 참고)

3. CRPG

그래서, RPG는 재미난 보드게임의 일종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딱 이맘때, '개인용 컴퓨터' 라는 개념이 나오면서 미쿡의 너드들이 여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물론 너드들은 보드게임&RPG도 당연히 좋아하고, '개인용 컴퓨터' 와 'RPG'가 합쳐진 물건에 대해서도 발상하지 아니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CRPG (Computer Role Playing Game) 가 나오게 된다. 최초의 CRPG를 만든건 그 이름도 거룩하신 울티마의 아버지, 먹튀 게 리옷 선생의 '아칼라베쓰Akalabeth' 라는 게임이라는 풍문을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것도 같은데, 검증하기 귀찮으니 그냥 넘어가겠음.
아무튼, 이 CRPG는 이제 양키나라에 널리 퍼지면서 꽤 높은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이전의 RPG가 컨텐츠보다는 시스템의 완성도와 사람들이 발휘하는 애드립에 의해 굴러갔다면, 이제 개발자들이 미리 짜넣어 둔 컨텐츠의 질과 양에 대해서도 논할 수 있는 시기가 오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CRPG는 CRPG 고유의 재미를 발굴, 계승, 발전해나가야 한다며 컨텐츠의 중요도를 늘리고 더 아름답고 우아하며 재미있는 컨텐츠를 만드는 쪽으로 달려갔고, 다른 누군가는 기존의 TRPG가 주는 재미를 충실하게 CRPG에서 구현하는 것이 목표라며 또 그쪽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어느쪽이든 해볼만하고 재미있는 게임들을 많이 만들어났다.
본토 CRPG의 자세한 역사에 대해서는 내가 정확하게는 잘 모르기도 한데다가 복잡하고 의견도 갈리니까 접어두기로 하고, (혹시 여기에 대한 주류의견과는 다르지만 확고하고도 고집스러운 어떤 견해를 알고 싶으신 분은 http://deadly-dungeon.blogspot.com/ 방문을 추천. 그런 견해에 별로 관심없어도 가보기를 추천) 다음 단계로 넘어가보자.

4. JRPG

양키나라에서 한참 CRPG가 유행할 때, 여기에 일본 게임업계가 뛰어든다. 이때 일본 게임업계의 주류 하드웨어는 PC가 아니라 콘솔이었다. 저 유명한 닌텐도의 패미컴. 일본의 게임 만드는 사람들은 양키나라에서 유행한다는 CRPG를 해봤고 무척 재미가 났다. 물론 콘솔로 이식하면 대박날 것 같았다. 근데 쉽지가 않았다. 문제는 하드웨어였다. 그 중에서도 입력장치가 가장 문제였지 않을까 ... 하고 생각한다. 키보드에 달린 버튼의 숫자와 조이패드에 달린 버튼의 숫자를 비교해보면 이 문제가 얼마나 곤란한지 알 수 있다.

이때까지 CRPG는 직접 커맨드를 입력하거나 NPC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관식으로 넣어야 하는 경우등이 빈번했다. 게다가 복잡하고 정교한 여러 장치들을 원활하게 사용하려면, 수십개의 버튼이 달린 키보드가 필수였다. 조이패드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너무 곤란하고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다. 여러 뎊쓰(depth)를 둔 메뉴를 활용하는건 접근성이 지나치게 떨어진다. 양키나라 게이머들이 주로 너드들을 주축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이 시절의 패미컴 사용자들은 가볍고 접근이 쉬운 좀더 캐쥬얼한 게임에 주목하는 플레이어들이었음을 상기하자.

그래서 어렵고 복잡하고 정교한 게임을 깍아내고 단순화하고 보다 명료하게 다듬어서 나온 것이 '드래곤 퀘스트' 이다. 양키들의 CRPG를 기본 모델만 참조하여 좀더 단순화, 명료화하여 만들어 낸 명작이다. 드래곤 퀘스트는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대박을 쳤고, 이후 우리가 흔히 JRPG라고 불리우는 장르를 새로 만들어냈다. 내가 '장르를 새로 만들어냈다' 라고 말했음에 주목하자. 나는 일반적인 CRPG와 JRPG를 다른 장르로 본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재미를 제공하는 매커니즘'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CRPG는 앞서도 말했듯 RPG (TRPG) 본연의 재미를 컴퓨터 위에서 제공하거나, 시스템 기반의 RPG에서 제공하기 어려웠던 정교한 컨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는게 매력이며, 이 장르의 핵심이다. 그러나 JRPG는 이와는 꽤 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첫번째는 스토리라는 컨텐츠이다. 기존의 CRPG는,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가든, 중요한건 열려있다는거다. 결말은 다 똑같을지언정 과정만은 플레이어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지향한다. 하다못해 같은 퀘스트를 클리어하며 진행하더라도 순서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플롯이라는게 '기승전결'의 구조로 구성된다는걸 상기하자. 결승전기나 승기결전등의 순서로는 제대로 조율된 감동이나 심상을 전달할 수가 없다. 플롯에서 사건(퀘스트)의 순서는 꽤 중요한 요소이다. CRPG에서 퀘스트를 수행하는 순서가 그닥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다는건, 스토리의 정형성이 현저히 낮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임 컨텐츠로서의 비중이 낮은 것은 둘째치더라도, 비중이 높다한들 기존의 플롯과는 다른 형태의 재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드래곤 퀘스트의 스토리는 그렇지 않다. 빡빡하게 정해진 스토리를 '정해진 순서에 따라' 플레이해야만 하며, 그것이 개발자들이 안배해 놓은 재미를 가장 충실하게 즐길 수 있는 구조이다. 양키 CRPG식의 산만하고 헷갈리는, 별도의 메모가 없으면 기억하기조차 쉽지않는 자잘한 퀘스트들로부터 플레이어들을 구원(?)해주는 장치이자, 미쿡의 하드한 플레이어들에 비해 훨씬 마일드하고 연약한 일본의 게이머들에게 RPG 비슷한거라도 맛보여주려는 시도였다고 본다. 드래곤 퀘스트는 그렇게, JRPG장르에서 '스토리의 품질'을 중요한 요소로 확립한다.

두번째는 성장이라는 시스템이다. 원래 CRPG에서 레벨이라는건 필수가 아닌 옵션 시스템이었다. 게다가 용도도 지금과는 달라서, '캐릭터의 성능을 나타내는 일종의 점수' 같은 역할이었다. 아 물론 지금도 그렇게 보자면 볼 수 있겠으나 미묘하게 비중이 달랐달까? 고전 CRPG에서 캐릭터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중간에 있는 몬스터들을 물리쳤고, 물리치고 물리치다보니 캐릭터의 능력이 좋아졌고, 그런 능력들을 종합해서 점수를 내보니 레벨 12 이더라 ... 하는 느낌이었다면 JRPG는 "내 캐릭터의 현재 레벨이 8이니까 레벨 12정도가 되기 위해서 몬스터를 잡고 또 잡고 또 잡았고, 이제 레벨 12가 되었으니 다음 목적지로 가볼까? 물론 중간에 만나는 몬스터들은 이미 레벨 12인 나와는 상대도 안되지 훗." 이런 식이다.

둘 사이의 차이가 잘 전달되었는지 확신은 안서지만 마냥 이거만 설명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넘어가자면, JRPG는 이전까지 CRPG에서 부가적 요소에 불과했던 '캐릭터의 성능' 측면을 강하게 부각시켰고, 이 성능이 게임 진행에 따라 점차 강화되면서 느끼는 '나는 강해졌다' 즉 캐릭터의 성장이 주는 쾌감에 주목했다. 이는 다시 소위 말하는 '레벨 노가다' 등의, 이전 CRPG에서는 볼 수 없었던 플레이 패턴을 개발하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아울러 이 레벨 시스템과 '성장의 즐거움' 은 JRPG가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확립된다.

결국 드래곤 퀘스트를 필두로 쏟아져나온 JRPG들은 대체로 스토리를 중심으로 정갈하고 단순한 컨텐츠 배치, 그리고 캐릭터가 성장하는 재미를 좀더 적극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는 특성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이전의 CRPG들과는 꽤 많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5. K-MMO-RPG

지금까지 설명한건 일종의 계보이다. 앞의 어떤 요소가 뒤의 어떤 요소에게 영향을 미쳐서 뭔가 달라졌다는 얘기들. 근데 한국의 mmorpg는 이런 계보에서는 살짝 동떨어져 있다. 물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느닷없이 '창조되었도다' 라는건 아니고, 연관성이 좀 떨어진달까?

시초는 MUD였다. 한창 90년대 초중반에 유행하던 물건이다. 텍스트로 표현되는 공간을 탐험하며 이런저런 일들 (대부분은 전투)을 하는건데, 이때까지만해도 '멀티플레이' 라는 개념은 굉장히 드문 것이었다. 여기에 던져진 MUD는 광폭한 인기의 물살을 ... 탔다고 말하긴 어렵다. 얘들은 폭넓은 계층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기보다 극소수의 이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고 말하는게 맞겠다. 중요한건, 이런 류의 컨텐츠들, 즉 소수의 광적인 지지를 끌어내는 컨텐츠들은 대부분 '폭넓은 인기의 씨앗' 같은걸 품고 있다는거다. 그게 발아를 제대로 하면 대중적 지지를 받게 되는거고, 아니라면 그냥 쭉 소수의 인기를 업고 가는거고.

머드게임 쫌만 해 본,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이 빈약하게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발상은 충분히 해볼만 했다. "여기에 그래픽 스킨 씌우는거 별로 어렵지 않겠다. 그리고 그렇게하면 더 재미있겠다" 나만해도 그랬었고. 문제는 그게 뜰거냐는 확신이 어느정도로 굳건하냐는 것, 그리고 그걸 현실화할 추진력이 있냐는 것. 다행스럽게도 실천한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대박이 났다.

일각에서는 리니지가 로그라이크류 게임을 구현하려던 거라고들 하는데 내 생각은 ...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정도이다. 사실 리니지1의 말섬만 있던 시절 게임을 가지고 로그라이크를 연상하기란 꽤 어려운 일이지싶다. 리니지에서 로그라이크의 기본이 되는 부분을 찾아보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죽거나 클리어하면 리셋되는 모험, 정교한 여러 장치들, 격하게 높은 난이도에서 나오는 긴장감 등) 로그라이크의 핵심을 계승하려했다면 그런 리니지가 나올 수 있었을까? 그보다는 바람의 나라 (초창기 바람의 나라는 그야말로 머드게임에 스킨 씌운 티가 팍팍 나는 게임이었다.) 를 만들면서 느꼈던 몇몇 점들을 좀더 개선한 정도가 아닐까싶은데.

아무튼 그런 시도를 하다가 대박이 나버린 리니지 및 KMR의 재미의 본질은 '성장과 경쟁' 에 있었다. JRPG가 발견한 '성장하는 재미'가 '다른 이들과의 경쟁' 이라는 요소를 만나면서 폭발할 듯한 재미를 주게 된거다. 드래곤 퀘스트는 만들 때 '좀더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RPG'를 만들자는 의도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성장하는 재미의 발견, 정갈하고 단순한 스토리라인의 추구' 라는 두 가지 요소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리니지를 만든 애초의 의도가 '성장하는 재미와 경쟁하는 재미의 결합' 이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두 요소가 만났을 때의 시너지 효과가 어마어마하다는걸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5. 맺음

뭐 그래서, 요새 나오는 아이온 같은 게임들은 서구의 mmorpg와 유사한 면이 꽤 많아보이긴 하지만, 아무튼 처음에 한국 mmorpg라는건 이런 식이었다. 우리가 흔히 'RPG'라고하면 연상하는 서구의 CRPG와 리니지가 추구하는 Kmmorpg 사이엔 이렇게 넓고도 깊은 간극이 있으며, 두 게임 장르가 추구하는 방향은 별다른 연관성도 없다. 따라서 Kmmorpg가 주는 재미를 CRPG에 비교하여 까는건 이상한 일이다.

단, 이런건 비난받을만하다고 본다. 서구의 mmorpg는 울티마에서 시작하여 eq를 거치며 와우에 이르기까지, 부단히 변화해왔다는 점. 그러나 Kmmorpg들에게서 그런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거둔 경우는 거의 없어보이며,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술적 발전 (구체적으로는 그래픽이나 서버용량 등)과 서비스 기술의 향상만 눈에 띈다는거다. 게임 디자인적으로, 최근에 나오는 Kmmorpg 들과 리니지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점'이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는건 꽤 안타까운 일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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