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와우의 혁신성에 대해


와우의 혁신성에 대해

1. 와우의 혁신성에 대한 의문?

와우가 혁신적이지 않은 게임이라는 지적이 참 많은데 대해, '다른 게임도 그닥 혁신적인 경우는 별로 없었음' 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고, '와우는 충분히 혁신적이다' 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쪽인데, 와우가 퀘스트를 가지고 일으킨 변혁이 대단히 혁신적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자잘한 부분에서의 참신함도 있긴 하지만 이걸 가장 크게 생각한다는 것.

여기서 혁신이란 단순히 '새로운 것을 시도' 했다는 점만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측면을 좀더 크게 본다. 이를 위해서 살펴봐야 할 것은 와우 이전에는 그런 게임들이 별로 많지 않았으나 와우를 통해서 다른 대부분의 게임들도 가지게 된 요소를 봐야한다. 이를 찬찬히 살펴보기 위해 'mmorpg에서 캐릭터 성장 방법의 역사'를 먼저 살펴보자.

2. mmorpg에서 캐릭터 성장 방법의 역사

1) 태초의 mmorpg에서 성장이라는건 그냥 노가다였다. 리니지를 봐도, 울티마 온라인을 봐도 그렇다. 리니지의 솔로닥사 (솔로잉 플레이 & 닥치고 사냥 플레이) 만큼이나 울온의 스킬 올리기도 단조롭고 지루한 '작업' 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모델도 별로 문제가 없었다. mmorpg라는 장르 자체가 처음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그 신기함에 매료되어 솔로닥사를 참을만한 것으로 여기고 플레이했던 것이다. 몇년동안은.

2) 시간이 흐르고 mmorpg 자체에 대한 새로움에 플레이어들이 적응해가자 이제 솔로닥사의 문제점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몇년간이나 하기에 이 성장 방법은 너무 지루하고 반복적이어서,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다른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3) 에버퀘스트에 와서 '탱커-딜러-힐러의 파티플레이'라는 희대에 남을 쩌는 모델이 완성되었다.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 역할(Role)을 여러 클래스가 분담하여 강력한 몬스터들을 해치워나간다는 컨셉이었는데, 여기에 적용된 적대감 시스템 (aggro system) 이 당대 최고의 명작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홀로 외로이 반복적 사냥을 하던 시대를 넘어, 함께 다같이 사냥을 하는 시대로 넘어갔다.

4) 태초의 mmorpg에서 성장이 '솔로 & 닥사' 였다는 점을 기억하자. 에버퀘스트는 '솔로'의 문제를 해결했지만, 여전히 '닥사'의 문제는 남아있었다. 파티에 들어가서 레벨업 장소를 물색하고, 한번 자리를 잡으면 (camp) 그 자리에서 죽치고 앉아 몇시간이고 같은 일 (닥사)을 반복한다. 탱딜힐 모델 자체의 위력이 워낙 어마어마했던지라 수년에 걸쳐 이 모델을 우려먹을 수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룹닥사' 모델도 서서히 수명을 다해가고 있었다.

5) 더군다나 에버퀘스트의 파티플레이 모델 역시 단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파티원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특정한 클래스의 지나친 인기 또는 지나친 소외의 문제, 파티원들의 실력편차에 따른 내부분열 문제 (딜러는 탱커가 어글 못잡는다며 욕하고, 탱커는 힐러가 힐을 안준다며 욕하고, 힐러는 니깟 상것들이 감히 나를 욕하느냐며 짜증내고)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불거져나온 것이다.

6) 솔로닥사에서 솔로잉의 문제는 해결된 듯 보였지만 그 해결책은 여러 단점들을 노출하며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닥사 문제는 여전히 뾰족한 돌파구가 없이 답보된 상태로 남아있었다. 사람들은 다시금 이런 성장구조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때 와우가 나오며 제시한 해결책이 '퀘스트를 통한 성장' 이라는 구도였다.

3. 와우가 제시한 해결책의 의의

솔로닥사시절, 캐릭터 성장의 보상은 주로 매번의 레벨업을 통해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길고 지루한 솔로닥사를 통해 캐릭터가 경험치를 모으는 동안은, 캐릭터의 성능 (능력치)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 경험치가 일정량에 도달해 레벨이 올라가는 순간, 캐릭터의 성능은 아주 조금이라도 향상이 되며, 이것이 바로 보상으로 주어지는 요소였던 것이다. 파티플레이를 통해 사냥의 방법을 혁신한 에버퀘스트의 경우에도 이 점은 다를바 없었다. 문제는 레벨업 사이의 간격이 바로 '닥치고 사냥'을 해야만 하는, 소위 말해 '노가다' 구간이라는 거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같은 일을 계속해야만하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시간. 그리고 와우 이전에 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메꾼 컨텐츠는 없었다.

와우의 경우, 퀘스트를 통해 보상을 훨씬 세분화했다. 플레이어는 NPC가 주는 퀘스트를 수행하고, 퀘스트를 완료하는 즉시 보상을 받는다. 레벨업에 소요되는 플레이타임과 퀘스트 하나를 수행하는데 소요되는 플레이타임의 갭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너무 널찍해서 지루할 수 밖에 없었던 레벨과 레벨 사이의 간격을, 아주 작고 귀여운 여러개의 퀘스트들이 메꾸게 되었다.

와우에서 제시한 '퀘스트를 통한 레벨업' 이라는 구도는 가장 위에서 말했던 '솔로닥사'의 두 가지 문제점 중 '닥사'를 해결했다. 한 자리에 서서 수십시간동안 주리줄창 같은 몬스터만 잡는 행위를 없애버렸고, 이를 통해서 레벨업의 과정을 좀더 재미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물론 솔로잉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이는 솔로잉을 문제로 남기기보다는, 파티플레이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을 해결한 쪽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이 모델은 와우 이후에 나타난 대다수의 mmorpg에게 거의 '표준적인' 캐릭터 성장 모델로 자리잡았다. 최근에 출시된 mmorpg들 중 캐릭터의 직선형 성장을 토대로하는 게임들 치고 시작부터 만렙까지 퀘스트를 촘촘하게 배치하지 않는 mmorpg를 찾기는 꽤 어렵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말해두었듯, "와우 이전에는 그런 게임들이 별로 많지 않았으나 와우를 통해서 다른 대부분의 게임들도 가지게 된 요소" 로서, '퀘스트를 통한 성장' 이라는 모델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이다.

최초의 성장 모델이었던 '솔로닥사'의 시절이 수년간 이어진 끝에 수명을 다하고, 에버퀘스트에 의해 '그룹닥사'라는 개념이 소개되었다. 그룹닥사 모델이 다시 수년간 mmorpg에서 가장 보편적인 캐릭터 성장 방법으로 자리매김해왔으나, 이 역시 수명을 다해갈 때, 와우에 의해 '퀘스트를 통한 성장' 이라는 모델이 소개되었고,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누구나 칭송하는 에버퀘스트의 '파티플레이 모델' 이 지탱한 만큼, 와우의 '퀘스트를 통한 캐릭터 성장 모델' 또한 mmorpg 의 역사를 지탱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와우가 일으킨 혁신은 에버퀘스트에 비해 못하지 않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4. 또다른 의견

혹자는 와우의 퀘스트가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능'이 있으며, 플레이어들이 레벨업을 하는 동안 '스토리를 즐기'고 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은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와우가 컨텐츠에 녹여놓은 스토리의 양은 극히 방대하며 정교하다. 아울러 이런 컨텐츠들은 '어디에나' 있다. 길가다 발견하는 몬스터 부족 하나하나마다 설정이 주어져있고, 사소헤보이는 퀘스트 하나하나마다 중대한 다른 이야기들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유명한 아이템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유래'라는 배경이야기가 들어간다. 거의 '편재' 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이야기들이 들어차있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이렇게 '어딜봐도 존재하는' 와우의 배경스토리 중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오늘도 접속하여 일퀘를 돌고 막공을 찾아 파티채널을 살피는 플레이어들 중, 세계가 파괴되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공격대에 참여하려는 플레이어와,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강력한 아이템을 탐내어 공격대에 참여하려는 플레이어 중 어느쪽이 더 많을까? 가끔 이렇게 자명한 결론을 외면하고 퀘스트는 스토리를 알려주므로 그것이 주된 용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 그거야 뭐 지들 자유니까 그렇게 생각하라지 -_-

5. 퀘스트를 통한 성장, 그 이후

이 분야의 '문제의 발생과 해답을 찾는 일'들이 수학문제 풀이같다면 나름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곤 했다. 즉 한 번 찾아낸 정답은 이후 영구적으로 정답이 되는 세계. 물론 정말로 그렇다면 세상이 너무 지루해질테니 곤란하겠지만. 아무튼, 솔로닥사의 시대를 지나 그룹닥사의 시대를 거쳐 퀘스트렙업의 시대에 이르는 과정은, 파란만장하긴 했지만 나름 흥미진진한 변화의 역사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문제들은 '정해진 정답'이 그 시대에는 정답이었을지언정, 시간이 지나면 정답이 아니게 된다.

와우가 서비스를 시작한지도 벌써 6년이 넘은 것 같다. (자세한 기간은 기억이 잘 ;;) 와우 서비스의 초창기에 퀘스트렙업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이제 많은 플레이어들이 퀘스트렙업을 경험한지라 이제 더이상 이 구도는 신선하지도, 재미있지도 않다. 물론 와우는 나름 꽤 열심히 노력한 듯 보인다. 오리지널의 지루하고 단조로운 퀘스트에서 벗어나 플레이 자체로 재미있는 퀘스트를 제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으며, 대격변에 이르러 와우가 제공하는 퀘스트들은 딱히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걸 하는게 재미있어서 해도 될 정도로 알차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그러나 와우의 밑바탕에 깔린 '퀘스트를 하며 레벨업을 한다' 라는 구조는 변화할 수 없으며, 와우가 지금껏 여러 확장팩을 거쳐 노력해 온 것들은 퀘스트렙업 시대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한 조치였지 새 시대를 열 수 있는 조치는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다음 세대의 '성장 방법' 이 무엇이 될지 짐작하기 어렵다. 와우가 불러온 일종의 부작용인 인스턴스 중심주의를 탈피하기 위해 많은 다른 게임들이 노력하는 가운데, 뭔가 획기적인 방법이 나올 듯도 하지만 아직까지 크게 주목되는 게임은 없는 상황. 대부분 퀘스트렙업이라는 모델을 조금씩 자기식대로 고치고 바꿔서, 안전한 범위내에서의 변화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뭐, 우리같은 플레이어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듯 누군가 멋진걸 만들어주길 기다렸다가 감탄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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