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3일 일요일

프로그래머는 탱커, 디자이너는 딜러




레이드 좀 해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레이드에서 탱커란 '딜러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 을 확보해주는 역할을 한다. 좀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탱커가 확보한 어그로의 범위내에서만 딜러들은 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던 같은데서 다수의 몹을 상대로 싸울 때 탱커의 주 어그로 대상이 뭔지를 파악하고 점사하는 눈치라던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그로 감소기를 적절히 사용해주는 정도의 센스는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탱커의 어그로 범위 내에서만 딜링' 이라는 규칙은 변하지 않는다. 

프로그래머와 기획자의 관계도 역시 그와 같다. 기획자가 아무리 거창하고 대단한 기획을 해내도, 프로그래머가 그걸 구현할 수 없다면 결국 기획자는 프로그래머가 구현할 수 있는 것만 추려내야 한다. 프로그래머의 역량 한계 내에서만 기획자는 운신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프로그래머란 탱커가 어그로를 확보하듯, 기획자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유능한 탱커를 만난 딜러는 무척 기쁘겠지만, 본인의 딜 싸이클이 구리거나 세팅이 안맞으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모두 활용하지 못한다. 반대로 기획자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프로그래머의 역량이 이를 받쳐주지 못한다면 결국 슬퍼질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서로간의 궁합이 딱 맞으면 참 좋을거다. 카멕의 기술이 받쳐주니까 로메로가 FPS를 만들 수 있었던 거겠지. 

탱커랑 딜러가 서로 빡쳐서 싸우는 공대에서 뭐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딜러는 일부러 어글 튀어서 탱커 난감하게 만든 후 자기가 죽으면 탱커를 욕하고, 탱커는 탱커대로 어글 관리 못하는 병신이라며 욕한다. 기획자는 일부러 말도 안되는 기획안을 내놓고 프로그래머가 난감함을 표하면 프로그래머의 능력 부족이라 욕하고,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래머대로 기획안에 현실성이 없다며 성토하는 팀에서 뭔가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리 없다. 각자 자신들의 고충이 있을테고 상대방에 대한 서운함도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매번 투닥거린다면 서로에게 좋지 않을거다. 부디 다들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함은 물론 상대방의 입장도 좀 생각하면서 일하면 좋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