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3일 일요일

와우에게 배우기 3 : mmo와 mo



1. mmo는 뭔가

와우는 어떤 장르의 게임인가? mmorpg라고 한다. 여기서 mmo 라는 말이 어떤 영단어의 축약인가하는걸 설명하는건 너무 뻔해빠지니까 생략하도록하고, 막연하게나마 mmo가 무언가를 고민해보기 위해 지금 필요한 만큼만 이 단어의 의미를 구체화해보도록 하자. 

mmo라 하면 대충 .. 적게는 수십명에서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이 동일한 공간에서 서로 인터랙션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적 요인을 구현해 둔 게임을 말한다. 앞에서는 존나 거창하게 차근차근 mmo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것처럼 말해놓고 혼자서 냅다 단정내려버려서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 기능적 요인을 구현해 둔 ' 이다.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할지도 몰라. 와우만해도 겨울손아귀 전장이 벌어질 때 수백명의 유저가 겨울 손아귀로 몰려들면 랙이 쩔기 시작한다. 거의, 도저히, 정상적인 게임의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말이지. 

그러나 와우가 mmorpg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 중에서도 겨울손아귀 전장이 와우의 가장 mmo 스러운 pvp 컨텐츠임을 부인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즉 엄격하고 엄밀한 의미에서 ' 수백명이 모여서 서로 인터랙션을 주고받는 것 ' 이 어불성설스럽긴해도, 여전히 그런 일이 이 게임이 구현해 놓은 로직 상에서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와우는 mmorpg인 것이다. 

그럼 이에 반대되는 개념은 뭔가. 흔히들 mo- 라고 한다. 말하자면 던파나 디아블로같은걸 의미하는거지. 방을 만들고 멤버를 모으고 맵과 미션을 고르고 게임을 시작하는 형태. 디아블로 또는 던파에서는 애초에 수십명이나 수백명이 동일한 게임 상의 공간에 모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mmo라고 부르지 않는다. 

2. 와우는 mmo가 맞는가.

와우는, ' 역사상 가장 성공한 mmorpg ' 라고 불리고 있긴 하지만, 사실 놀랍게도 와우는 지금까지 출시되었던 그 어떤 mmorpg 중에서도 ( 지금까지라고하면 예외가 생길지 모르니 와우가 출시되던 당시까지만해도. 로 이해해주기 바람 ) mmo스러움이 적은 게임이다. 이상한가? 별로 이상하진 않겠지 당연히. 인스턴스 던전 얘기가 나올거라는게 이미 감이 딱 잡힐테니까. 그렇다. 인스턴스 던전 때문에, 와우는 mmorpg들 중에서는 가장 덜 mmo스럽다. 

아직도 잘 이해가 안되는 사람을 위해 와우 이전에 가장 성공적이었던 mmorpg인 eq의 예를 살펴보자. eq에서는 인던의 개념이 없다. 그러나 레이드와 네임드는 존재한다. 그러면 어떤식이 되냐면, 오리지널 유저라면 기억할 ' 이손드레 ' 등등의 필드넴드식의 넴드들만 존재하게 된다. 즉, 일정한 주기로 필드에 넴드가 생성된다. 그럼 공대들이 우르르 몰려가. 그리고 넴드를 공략해. 문제는 이 공대가 한두개가 아니라는거다. 

지금 당신이 플레이하는 서버의 정공은 몇개인가요? eq의 공대는 그거의 3-4배라고 보면 된다. 왜냐면 eq는 얼라호드로 나뉘어있지가 않거든. 게다가 막공도 없어. 난이도는 또 와우에 비하면 경이적으로 높아서, 막공으로 잡긴 여러모로 무리였거든. 얘들이 동시에 우르르 몰려가서 넴드 잡겠다고 쌩지랄을 한다고 생각해보면, 막장이겠지? 그래서 공대들은 사이좋게 스케쥴을 짜서 넴드를 공략하곤 했다. 월요일 1트는 A공대, 2트는 B공대. 만약 A공대가 1트에서 실패하면 기회는 B 공대로 넘어감 등등등. 딱 듣기에도 존나 복잡하잖아? 

그래서 와우가 훌륭한 게임인거다. 인던을 만들어서 이런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해버렸잖아. 이제 공대들은 서로 스케쥴짜고 트라이 횟수 정하고 트라이를 한거네 실수로 애드해서 전멸한거네 등등을 따지거나 왜 스케쥴 안지키고 새치기하냐는 등의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 각자 지들 인던에 드가서 진도 나가면 되니까.

근데 묘하게도 이건, mmo보다는 mo의 형식을 훨씬 닯았다. mo에선 어때. 팀을 만들어서 각자 지들 방에 틀어박혀서 게임하잖아. 그거랑 인던은 논리적으로 보자면 완전히 동일하다는거지. 단지 다른 점은 와우에서는 공대 만들고 뭐하고 하는 부분을 마을이나 필드 등의 오픈된 공간에서 진행한다면, mo 류의 게임에서는 이걸 로비와 방 등을 만들어서 해결한다는 부분이 다를 뿐. 즉 논리적으로는 동일하지만 형식적으로 다소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거다.

근데 잘 살펴보면, 와우의 중심 컨텐츠는 모두 이런식이다. pve는 물론 인던 공략이 되겠지. pvp는? 전장이나 투기장이 주된 컨텐츠이지. 물론 겨손이 생기면서 예외적인 부분을 만들어넣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전장이든 투기장이든 mmo는 절대 아니다. mo라고 부르는게 훨씬 자연스럽다. 와우의 컨텐츠는 논리적으로 볼 때 기존의 mmo보다는 mo에 훨씬 더 가깝다는거임. 

3. 그럼 와우는 mmo를 흉내내는 mo인가? 

내 생각엔 반쯤은 그렇다고 본다. 하지만 완전히 mo라고는 볼 수 없겠지. 단순히 형식적으로 mmo를 차용하고 있데서가 아니다. 와우의 필드는 엄연히 자기들만의 역할을 해내고 있거든. 그게 뭐냐면, 와우의 ' 솔로잉 컨텐츠 ' 다. 다시 말해 와우에 존재하는 필드는 솔로잉 컨텐츠의 무대가 되고, 인던은 멀티플레이 컨텐츠의 무대가 된다는거지. 뭔가 묘한 전복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지않은가? 인던이란 격리된 공간은 왠지 솔로잉에 적합할 것 같고, 필드라는 오픈된 공간은 멀티플레이에 적합할 것 같이 보이는데 말야. 언뜻 보기엔 물론 그렇다. 하지만 실제로 와우의 공간들이 소비되는 패턴은 그 반대라는거다.

필드에서 님들은 주로 뭐해? 일단 생각나는건 렙업이지. 요새는 친추버스를 통해 고속렙업을 하기 위한 인던순회가 보편화되었지만, 이건 일종의 예외적인, 말하자면 이벤트적인 거고. 엄밀히 말해서 렙업은 대부분 필드에서 벌어진다. 혼자 퀘스트 받고 필드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경험치를 먹는거지. 그럼 그렇게 해서 만렙찍고나면 필드는 버리나? 아직 아니다. 일퀘가 남았거든. 인던에서 하는 일퀘도 물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퀘스트라는건 대단히 개인적인 컨텐츠다. 모두가 합심하여 진행하는 퀘스트같은게 와우에 있어? 있긴 있다. 파티퀘스트를 말하는게 아니다. 그것도 여전히 개인적이거든. 개인적인 퀘스트를 여러명이 모여서 하는 것 뿐이지. 그보다는 태양샘 고원 같은걸 말하는거다.

리치킹 나오고 시간이 좀 되니까 태양샘이 뭐였는지 까먹었지? 태양샘 고원은 원래 업데이트된 직후에 아주 작은 면적만을 마을로 제공한다. 그러나 그 서버에서 활동하는 무수한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태양샘 퀘스트를 진행함에 따라서 점차적으로 마을의 면적이 넓어지고, 퀘스트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이걸 바로 멀티플레이 퀘스트라고 보는거다.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와서, 필드는 그래서 솔로잉을 위한 공간이라는거다. 레벨업과 일일퀘스트를 위한 공간. 그리고 레벨업이나 일일퀘스트는 극히 개인적인 컨텐츠이지. 다른 유저들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는 제한적이다. 반면 인던은? 애초에 공대를 만들지 않으면 입장조차 불가능한게 인던이다. 5인용도 물론 혼자서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렇게 들어가서 클리어하기가 어려우니 여전히 멀티플레이 컨텐츠라고 봐야하는거지. ( 만렙이 쪼렙인던 혼자 드가서 다 깨고 나온다는 이딴 소리 하긔없긔 ) 

4. 와우는 mo의 구조를 차용하고 있으므로 나쁜 게임인가? 

여기부터가 내가 종종 골수 ' 순혈주의자 ' 들과 이야기할 때 머리아파지는 지점인데, 애초에 게임이란 걍 재밌으면 장땡이다. 그게 mmo건 mo건 말이지. 그리고 와우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 mo의 구조를 mmo에 도입하여 mmo의 단점을 잘 피해 간 ' 케이스다. 내가 ' 극복해낸 ' 이 아니라 ' 피해 간 ' 이라고 말했다는 점에 주목해줘. 지금까지 내가 해온 얘기들을 잘 들었다면 이해되겠지만, 이건 mmo가 가진 단점을 극복해냈다기보다는 회피한 케이스이거든. 

하지만 그러면 좀 어때. 와우는 무척이나 재미있지 않은가? 와우가 mmo인지 mo인지 또는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게임인지는 그렇게까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거지. 와우로부터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자는건, 와우를 본받아서 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도록 노력해보자는거다. 게임을 만든다는 입장에서 먼저 ' 어떤 장르의 게임을 만들까 ' 를 결정하고 들어가는건 썩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봐. ( 물론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는 이런 식으로 개발을 진행하는게 훨씬 유리하긴 하지만. ) 왜냐면 개발을 시작도 하기전에 규정해 놓은 그 장르의 컨벤션에 묶여서, ' 재미있는 방향으로 만들자 ' 가 아니라 ' 그 장르에 맞게 만들자 ' 쪽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그런 것보다는 장르가 뭐가 됐든 우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놓고, 완성된 게임이 기존의 어떤 장르와 유사하다면 그 게임을 그렇게 부르는게 순서가 맞는거지. 

그런 관점에서 와우는 mmo라고하기엔 mo스럽고, mo라고 하기엔 mmo스럽지만 분명한건 ' 재미있다 ' 라는 사실이다. 그거면 족하잖아? 와우가 백퍼센트 mmo가 아니라서 더 재미가 없어지나? 아니면 mo의 요소를 차용해서 더 흥미가 떨어지나? 그런건 전혀 아니거든. 주목해야 할 사실은 와우가 mmo를 표방하고 있고 실제의 게임도 mmo의 기본 구성을 따라가고 있긴하지만, 그럼에도 그 장르 자체가 가지는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장르의 구조를 차용하는데 아무런 주저가 없었다는 점이지. 

5. 장르간의 크로스오버 

장르간의 크로스오버 또는 퓨전이라는건, 내 생각에 두 가지 관점에서 진행될 수 있다. 첫번째는 어떤 요소 와 다른 요소를 결합했을 때 더 재미있어 질 것이 분명한 경우다. 대표적인게 ' 성장 ' 이라는건데, 게임을 하면서 경험치를 모으고, 경험치를 모아서 레벨이 올라가고, 레벨이 올라가면 캐릭터가 기능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 성장 ' 한다는 개념은 rpg에서 처음 나온거다. 이게 처음에는 확실히 rpg에서 나왔어. 근데 지금은? 장르를 불문하고 ' 넣을만한 여지가 있다 ' 싶으면 모두가 성장 개념을 갖다가 쓰고 있지. 그만큼 이 시스템 자체가 플레이어를 재미있게 만들어주고 있다는거임. 게다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유저들의 플레이타임을 늘리고 동접을 증가시키는데 목숨거니까. 그러기 위해서 더더욱 좋은게 또 성장 시스템이기도 하고. 즉 유저의 기호와 서비스사의 니즈가 맞아떨어져서 지금 특히 한국에서는 성장개념 없는 게임 찾기가 어렵다. 

근데 이 사례는 어디까지나 일종의 ' 시너지 ' 같은걸 노리는 크로스오버거든. 하지만 와우가 mo의 요소를 mmo에 끌어들인건 어떨까? 앞서도 말했지만 기본적으로 mmo라는 장르가 가진 ' 동시성 ' 이나 ' 영속성 ' 의 요소는, 플레이어를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대표적인게 공대끼리 시간표짜가며 레이드하는 사례인거지. 사소하게는 필드에서 렙업하면서 몬스터가 딸리는 경우. 옆 사람과 몬스터를 선치기 위해 경쟁한 경험이 누구든 한두번은 있을거라 본다. 이것도 mmorpg의 특징인 동시성이나 영속성이 주는 일종의 스트레스의 하나다. 근데 이런 ' 문제점을 해결 ' 하기 위해서 와우는 mo의 구조를 차용한거다. 물론 이렇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게임이 더 재미있어졌으니 이것도 시너지라고 하긴 해야겠지만, 기본적인 발상이 ' 장점간의 교차를 통한 장점 극대화 ' 라기보다는 '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차용 ' 이라고 봐야한다는거지. 

기본적으로 어떤 장르의 게임이 가지는 재미를 0 이라고 놓고, 이 장르의 단점 내지 문제점을 마이너스 요소, 이 장르가 가지는 장점과 강점을 플러스요소라고 놓을 때, 보통의 크로스오버는 이종장르간의 플러스 요소들을 교합하기 위해 이루어진다면, 와우에서 보여주는 mmo와 mo의 이종교배는 마이너스 요소를 상쇄하기 위해서 시도되었다는거임. 

내 말빨이 좀 부족해서 이해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암튼 난 와우를 보면서 이런걸 느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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