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3일 일요일

훌륭한 게임을 만드는 비상식적 방법



오래전에는 말야. 리니지1에서. 렙제가 40 이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잘 기억은 안나. ㅋㅋ 45 였던 것 같기도 하고. 50은 확실히 아니었던 것 같고. 아무튼 지금은 이 숫자가 중요한게 아니니까, 렙제가 40 이었다고 쳐보자구. 이때 고레벨의 레벨업을 위한 필요 경험치량은 참 무식했어. 원래 예전 일일 수록 무식한 경우가 많잖아? 요새도 군대에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군대있던 시절엔 고참들이 주로 예로 드는게 ' 쌍팔년도 군대 ' 였어. 일종의 ' 무식한 군생활의 대명사 ' 로 통했지. 일주일에 서너번씩 집합해서 줄빳다를 받고, 간부들이 솔선수범해서 구타를 지시하던 시절이었데. 내가 군생활 할때는 좀 달랐지. 일주일에 한두번 집합했고, 하루는 줄빳다를 맞으면 그 멍이 가시기 전에 또 때리는건 너무 가혹하니까 다른 하루는 대가리박곤 했어. 아무튼 그래. 오래될수록 무식한 사례들이 많이 발견되요. 리니지1도 비슷했어. 레벨업 필요경험치가 무식하게 높았다는 얘기야. 예를 들자면, 

38레벨 캐릭터를 39레벨 캐릭터로 키우려면, 1레벨 캐릭터를 38레벨 캐릭터로 키우는데 드는 시간만큼의 시간이 들어요. 그리고 다시, 39렙 캐릭을 40을 찍으려면 그 2배에 해당하는 시간이 들어. 이렇게 말하니까 존내 복잡하잖아? 정리해보면 1렙에서 38렙까지 걸리는 시간을 1 이라고 할 때, 

01레벨 ~ 38레벨까지 걸리는 시간 : 1 
38레벨 ~ 39레벨까지 걸리는 시간 : 1
39레벨 ~ 40레벨까지 걸리는 시간 : 2

따라서 만렙을 찍는데 걸리는 총 시간은 4가 되는거야. 이건 다시말해서, 만렙 캐릭터 하나 만들 시간이면 38렙 캐릭터 4개를 만들 수 있다는거지. 한편 리니지에서 캐릭터의 성능은 캐릭터의 레벨보다는 아이템빨을 훨씬 더 타잖아? 레벨 1 ~ 2 정도의 차이는 템빨과 가방에 들어있는 물약의 갯수로 충분히 커버 가능하다는거지. 다시 말하자면 38레벨짜리 캐릭터를 40레벨로 만드느니, 차라리 38렙 캐릭터를 몇개 더 만드는게 이익이라는거지. 그리고 이걸 판단하는 기준은 ' 효율적인가 아닌가 ' 하는 문제야. 그래서 당시엔 40렙이 만렙이라는거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만렙을 찍으려고 달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 포세이돈인가 포세이든인가 하는 기인이 나타나기 전에는 말야. 

근데 미안한데, 내가 지금까지 한 얘기들을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건지 좀 가물가물해. 하지만 내가 얘기하려는 핵심은 리니지1의 레벨업 필요경험치량의 끝자리가 몇인가 하는게 아니거든. 이건 단지 예를 들었을 뿐이야. 그러니 사실관계가 좀 어긋난 부분이 있어도 이해하고 넘어가줘요. 이런 예를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한건 이거지.

요약 : 효율은 중요하다.

우리는 효율이 일종의 진리라고 생각해. 여기에서 예외되는 부분은 많지 않아. 기껏 예외라고 해봐야 인권 정도? 하지만 요새는 인권따위 개나 줘버리라는 ( 하지만 실제로는 쥐가 물어가는 ) 상황이잖아? 효율의 권위는 그만큼 압도적이라는거지. 어릴적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착실하게 주입받아온 ' 자본주의 ' 라는 사상을 온 몸으로 체화하려 일상의 복음으로 실행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디에든 효율을 따져보는건 언제나 자연스럽고 당연해. 요약하자면 우리에게 효율은 유이의 꿀벅지에 필적하며, 비효율은 신봉선과 용호쌍박이라는거지. 

이런 관점에서 한번 게임 개발을 돌이켜보자구. 게임 개발의 완성도를 리니지1의 레벨이라고 생각해봐. 게임은 여러가지의 컨텐츠들로 이루어지잖아? 그리고 제한시간내에 빠르게 해내야하지. 여기엔 효율이 개입할 여지가 참 많아요. 예컨데 40레벨에 해당하는 완성도를 지니는 시스템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4의 시간이 필요해. ( 단위는 편의상 주Week로 하겠어요. ) 근데 그에 약간 못미치지만 크게 손색은 없는 38레벨짜리 시스템을 만드는데는 불과 그 1/4의 시간과 자원만 들이면 된다구. 그럼 우리에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을 고려할 때 뭐가 더 이익이야? 38렙짜리 컨텐츠보다 꼴랑 2레벨 정도 나은 뭔가를 만들기위해 3배의 시간을 더 쓰는 것보다는 차라리 비슷한 완성도의 컨텐츠를 3배 더 만들어서 양을 뿔리는게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겠어? 

1) 컨텐츠의 완성도 총합 : 걸리는 시간 = 40레벨짜리 컨텐츠 : 4주의 시간 
2) 컨텐츠의 완성도 총합 : 걸리는 시간 = 38레벨 * 4 : 4주의 시간

단순히 ' 효율 ' 만 따진다면, 같은 4주의 시간을 들여서 40레벨짜리 완성도를 지닌 컨텐츠를 달랑 하나만 만드는 것보다는 38레벨짜리 컨텐츠 4개가 훨씬 이익이라구. 국내 대다수의 게임 개발사는 딱히 이런걸 염두에 두고 그러는건 아니지만 - 앞서도 말했듯 효율제일주의는 이미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굳게 자리잡고있어서 의식하지 않아도 행하게 되지 - 어쨌든 이 원칙에 강하게 사로잡혀서 게임을 만들어. 

요약 : 게임 개발에서도 효율은 중요하다. 많은 이들은 의식하진 않아도 효율적으로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여기엔 38레벨을 40레벨로 끌어올리기 위해 드는 자원이 단순히 시간 뿐이 아니라는 어려움도 한몫 하지. 생각해봐. 단지 1주만에 1레벨에서 38레벨까지 스피디하게 레벨업을 해왔는데, 남은 3주동안 꼴랑 2렙을 더 올릴 수 있는 게임이 재미있겠는지.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도 비슷해. 스피디하게 게임을 개발하면서 점차 차오르는 완성도에 재미를 느꼈지만, 40레벨까지 마지막 2레벨은 참 지지부진하고 머리도 아프고 생각할 꺼리도 많고 괴롭고 복잡하고 힘들고 어렵다구. 그래서 포기하기가 참 쉬워요. 물론 단순히 ' 힘들어서 ' 라는 이유만으로 이걸 포기하면 남들이 비웃겠죠? 당연하게 ' 이게 더 효율적이니까 이렇게 하기로 하자 ' 라는 변명이 따라붙지. 이건 너무나도 당연하고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야. 

특히 우리나라 게임 개발의 과거사를 돌이켜보면 게임개발을 효율적으로 진행해야만 한다는 전제는 선택이 아니었어. 필수였지. 불과 10년전만 해도 사람들이 좀 안다는 게임은 스타와 리니지뿐. 나머지 다른 게임들은 대부분이 듣보잡이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게임을 재미있게 만든다보다는 우선 게임을 ' 완성이나 하면 ' 다행이었거든. 완성과 출시. 이게 지상명제였지. 지금은 쉬워보이지만 그때만해도 이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구. 잘 납득이 안되면 ' 마그나카르타 ' 사건을 떠올려봐. 이런 게임을 완성작이라고 출시했던게 불과 수년전의 일이야. 그나마 마그나카르타는 워낙이 유명한 게임이었기에 지금 우리의 기억 속에라도 남아있지만, 실제로 마그나카르타보다 구린데도 오픈했던 게임들은 엄청 많았거든. 

업계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반적으로 게임을 만든다는건, 개발 기간이 길어지면 실패에 가까워지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주어진 시간 내에 일정을 철저히 지키면서 만드는게 아주 중요한 과제였던거야. 그리고 게임 개발 과정에서 어떤 ' 빠듯한 ' 제한이 주어지면 자동으로 어떻게 된다? 효율극대화가 제일 우선시 되는거지. 요약하자면, 앞서도 말했듯, 200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의 게임 개발 필드에서 효율을 따지는건 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는거지. 

요약 : 우리나라의 게임 개발은 효율이 극히 중시되는 환경하에서 성장해왔다.

근데 이제는 시대가 좀 다르잖아. 한국의 게임 개발사가 짧다고는 할지언정 우리도 이제 어느정도 노하우가 쌓였고, 경력자들도 많아졌어. 요새는 어지간히 막장만 아니라면 대체로 게임들을 ' 완성하여 출시 ' 하는데 까지는 그 이전의 시기와 비교해서 그럭저럭 괜찮은 성공율을 보여주고 있다는거지. 

추세가 이렇게 변하니까 말야. 새로이 ( 원칙적으로 이게 새로워서는 안되는거지만 아무튼 ;; ) 요구되는 것이 바로 ' 재미있는가 ' 의 여부가 되는거야. 게임 까이꺼 치명적인 버그없이 적당히 돌아가고 재미 까이꺼 그 장르의 기본기만 좀 갖추면 적어도 개발사가 살아남는데는 큰 지장없던 시대는 이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거든. 이제는 남들과는 다른 명백하고 강렬한 재미가 없으면 시장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가고 있어요. 그러니 이젠 어지간히 만들어서는 쪽박차기 딱 좋은거지. 이는 즉, 게임 자체의 완성도는 끌어올리고 진정으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전력질주해도 버거운 시기가 됐다는거잖아? 문제는 여기부터야. 

우린 ' 효율적인 개발과정 ' 에 목숨을 거는 개발문화를 만들어왔어. 벌어지는 현실들이 우리에게 그걸 강요했지. 하지만 이제 시장은 점차 변해가고 있고, 변해가는 시장이 개발팀에 새로이 요구하는 역량은 단순히 효율적인 개발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무언가라는 점이지. 

젤 첨에 말했던 리니지의 레벨과 게임 컨텐츠의 완성도 사이의 상관관계를 좀더 우려먹어보자면, 그동안 한국의 게임 개발사들은 레벨 38짜리 컨텐츠들로만 게임을 채우기에도 허덕허덕하면서 달려왔거든. 근데 열심히 달리다보니 이제 다들 레벨 38짜리 컨텐츠로 채워진 게임을 만드는데는 도가 텄어요.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돼? 레벨 39 또는 레벨 40짜리 컨텐츠로 채워진 게임들을 목표로 해야해. 안그러면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오는거야. 그리고 레벨 40짜리 컨텐츠를 만들려면, 더이상 효율에만 집착해서는 어렵다는거지. 

요약 : 하지만 이제는 효율만 따져서는 먹고살기 힘든 시대가 오고 있는 듯도 하다.

이걸 대표적으로 잘 보여주는 개발사가 있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회사가 아니에요. 바로 블리자드야. 누구든 블리자드를 깔 때 가장 먼저 거론하는건 게임에 신선한 아이디어나 획기적이거나 기발한 발상이 없다는거지. 하지만 반대로 누구든 블리자드를 옹호할 때 거론하는건 ' 그래서 블쟈 게임이 잼엄냐? ' 라는거야. 블리자드는 기본적으로 기발한 아이디어에 기반해서 게임을 만드는 종류의 회사는 아냐. 그러나 그렇지 않음에도 당대 최고 최강의 게임회사이지. 

이유가 뭘까? 효율에 연연하지 않고 게임을 만들 줄 알기 때문이야. 38레벨짜리 컨텐츠 여러개보다 40레벨짜리 컨텐츠 하나가 갖는 의미를 잘 알고 있는 회사이고, 무엇보다도 40레벨짜리 컨텐츠를 만들 수 있는 개발자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거지. 어떤 싸움이든 마지막엔 자기와의 싸움이 가장 어려울 수 밖에 없어.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야. 이정도면 된 것 같은데도 위에서 자꾸 컨펌을 해주지 않고 끊임없이 완성도를 높이라고 요구하면 지치고 괴롭고 힘들어질 수 밖에 없거든. 근데 블리자드는 그런걸 잘 하는거지. 그래서 블리자드는 훌륭한 회사인거고. 

확신하진 못하지만 한 가지 예가 더 있어. 닌텐도가 그래. 닌텐도는 심지어 여기에 ' 새롭고 신선한 게임 디자인 ' 까지 갖췄어. 그야말로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라고 봐야하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닌텐도의 게임들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라서 난 그런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 닌텐도 게임들엔 내가 열광하는 아나키스트 or 펑크한 재미가 없어. 그런 재미는 세가의 게임들에 충만하지. 문제는 세가의 개발자들은 너무나도 자신들의 아이디어에만 몰두하는 나머지 종종 안드로메다로 간다는거지만 ;; ) 

요약 : 블리자드와 닌텐도는 종종 효율을 무시하고 게임을 만든다. 그리고 또는 그래서, 그들이 만드는 게임들은 언제나 훌륭하다. - 하지만 나는 닌텐도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말해놓고 웃기는 소리같지만 한가지, 내가 지금까지 한 소리는 게임 개발에 있어서 효율이 결코 ' 독 ' 이라는 소리가 아냐. 효율적인 개발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기본기라는거야. 기본기가 없이 배우는 응용기는 그저 편법일 뿐, 정도를 따르는 무공이 아니지. 그리고 정도를 따르지 않는 무공은 필연적으로 주화입마를 불러오기 마련. 시정잡배들 사이에서 알량한 힘싸움을 하는데는 배운 무공이 정파의 것이든 사파의 것이든 크게 문제가 없을지 몰라. 그러나 기본기를 사파의 무공으로 배워두면, 더 큰 물에서 놀려고 할 때 언제고 주화입마를 입을 수 밖에 없다는 것. 효율제일주의에 약간의 예외를 두자는 말을 ' 효율을 버려라 ' 로 받아들인다면, 스스로 붕괴할 수 밖에 없다는걸 기억해야겠져? 

요약 : 그렇다고 효율을 도외시하면 병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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